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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위대한 영혼’ 의 절제와 용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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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9-22 오전 11:28:34 |
이메일 | unit324@suwonmental.org | 조회수 | 16 |
"아무리 악독한 사람에게라도 인간성은 있다"
- 마하트마 간디
비폭력 운동!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
인도 건국의 아버지!
이 모든 단어들을 대표하는 ‘마하트마 간디’말입니다.
오늘은 민족운동 지도자이자 인도 건국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이하 간디)의 일생을 통해 그가 겪은 고난과 극복한 힘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디는 1869년 10월, 인도 서부 포르반다르의 식료품상을 하는 간디 집단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간디 역시 힌두교적 가치관과 종교관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간디가 18세가 되던 해에는 아메다바드에서 치뤄진 대학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학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돌아오면 좋은 일자리와 높은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주변인의 말에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큰 기대감을 품고 떠난 영국 유학! 간디의 기대를 충족시켜줬을까요?
간디에게 영국 유학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식습관은 물론 문화적인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간디는, 무사히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인도로 돌아옵니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가지의 소송 사건을 맡게 되는데, 이 사건이 간디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 남아프리카에 거주 중인 7만 명의 인도사람들이 백인들로부터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간디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자각하게 되어 남아프리카에 사는 인도사람들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보호하고자 남아프리카 연방 당국에 대한 인종차별 반대투쟁단체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1914년까지 인종차별 반대투쟁단체의 지도자로 활동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국에 대항하여 반영운동, 비협력운동 등을 전개합니다.
당시 간디는 인도인들에게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것을 당부하면서도 영국 통치자들을 존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반영운동을 전개하더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존중은 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
이처럼 인간에 대한 ‘존중’과 ‘절제’, ‘용서’를 가슴에 품고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몸 던진 간디는 인도의 민족운동 해방자이자 변호사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일수록 고난이 많은 법입니다.
간디 역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살아온 위인 중 한명이었습니다.
간디는 어릴 적부터 힌두교 집안의 특성 상 엄격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힌두교적 가치관과 종교관을 잘 따르며 말이죠.
하지만, 힌두교의 결혼풍습에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결혼풍습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그가 힌두교 가치관에 따라 조혼을 감행하지만, 출생 후 4일 만에 사망한 자녀로 인해 결혼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더 커졌다고 합니다.
세상에 빛을 보자마자 사망한 자녀로 인해 커진 부정적인 감정과 깊게 드리워진 죄책감이 그의 목을 얼마나 옥죄였을지…….
그가 느꼈을 심리적 고통이 짐작됩니다.
뿐만 아니라 치루염으로 사망한 아버지, 순탄치 못했던 학교생활, 자질부족으로 인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된 변호사 생활 등 간디의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영향을 끼친 걸까요?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해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겪게 됩니다.
나중에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기도까지 하게 되지요. 하지만 우울감이 간디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간디의 공감(Empathy)능력을 향상시켜주기도 했습니다.
간디는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제국주의자에 대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는 등 활발한 정치적 활동을 하였습니다.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거듭되는 투옥생활을 하며 지쳐가는 심신으로 고통을 토로하기도 하였으나, 비폭력의 정신을 굽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오해의 4분의 3을 없애는 방법은 우리가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그들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의 생각에 곧 동의하거나 그들에 대해 관대해질 것이다.”
“나는 기나긴 종교적 수양의 과정을 거쳐 40년 전부터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는다. … 그러나 악이라면, 나는 그것이 어디에 있더라도 미워할 수 있고, 미워한다. 영국인들이 인도에 세워놓은 영국 정부 체계를 혐오한다. … 그러나 군림하는 힌두교도들을 미워하지 않듯 군림하는 영국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의 방법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다.”
- 간디의 <자서전> 중
* 참고문헌: <광기의 리더쉽>, 가시르 가에미 / <자서전>, 간디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