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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기분장애와 애디슨병을 사회성으로 극복하며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대통령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04 오전 11:40:02
이메일 unit324@suwonmental.org 조회수 58

 

F. 케네디의 사회성

기분장애와 애디슨병을 사회성으로 극복하며 미국인의 사랑을 듬뿍받은 대통령

 

 

 

이상적인 정치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죠,

F. 케네디의 일생을 통해 그가 겪었던 고난과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F. 케네디(이하 케네디)는 어릴 적부터 정치와 관련된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는 자녀 중 한 명쯤은 국민들의 신망을 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하길 바랐던 아버지의 훈육 때문입니다.  

또한 케네디의 아버지는 아들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습니다.  

때문에 케네디는 어릴 적부터 바른사람, 바른정치와 관련된 교육을 받으며 스스로의 언행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받아온 바른 교육 덕분일까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구축함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됨에도 불구하고 정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여 많은 부하들을 구출해 냅니다

.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지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는 아버지의 오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29세의 젊은 나이로 선거에 출마합니다.  

이 선거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됨으로써 대통령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됩니다. 

 

그리고 1960년에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에 이릅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케네디는 뉴 프런티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미국 국민의 헌신적인 협력을 호소하며 활발한 선거운동을 펼칩니다. 어릴 적부터 받아온 바른 정치교육과 그의 슬로건이 빛을 발한 걸까요?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을 누르고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케네디는 미국의 대통령 가운데 선거를 통하여 당선된 최연소 대통령이자 가톨릭 신자 대통령입니다.

 

케네디는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의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어릴 적에 받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가슴 깊은 곳에 새겨 바른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걸었습니다.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아주 조심스럽게 가져갔습니다.  

또한 지역구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집중하여 재선되는 것에만 목표를 뒀던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미국국민 전체의 마음을 사로잡아 큰 뜻을 펼치기 위한 행보를 이어나갔습니다.  

지역구의 현안을 챙기면서도 당시 시대적 과제였던 전쟁과 공산주의, 핵 확산 등의 문제에도 독자적인 입장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입니다. 

 

이처럼 케네디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수반되어야 하는 능력과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인내하며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간 것입니다.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선거에서의 패배를 경험하지 않으며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온 케네디.  

그는 대체 어떤 고난을 겪은 걸까요? 

 

먼저, 케네디는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였습니다. 또한 당시의 미국에는 개신교가 주류였으나, 케네디 집안은 가톨릭교였습니다. 때문에 아일랜드 출신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케네디는 많은 차별을 받아야했고, 이 때문에 부를 축적하는 것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정치인(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으로 어릴 적부터 ‘1을 강요받으며 살았습니다.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하면 체벌을 당했을 만큼 엄격한 환경에서 성장한 것이지요 

 이와 같이 엄격한 가정환경 때문이었을까요? 바른 삶을 산 케네디이지만, 유년기에는 반항기가 가득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케네디는 척추질환과 부신피질 부전증 등의 신체질환과, 기분장애(정신질환)로 고통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질환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는 서류를 조작하면서까지 군에 입대하여 국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웁니다.  

그곳에서 일본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닥뜨리는 위험에 빠지게 되기도 합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사하지만, 형을 떠나보내는 비극을 맞고 맙니다. 

 

케네디가 경험한 비극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케네디에게는 지적장애를 앓는 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를 굉장히 치욕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딸의 존재 자체를 숨기며 살고, 그녀가 성인이 된 후에는 요양원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 뿐만 아니라 강제로 뇌수술을 종용하는 등 행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습니다.  

케네디는 이와 같은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함구명령을 따랐습니다.  

이로 인해 케네디는 어릴 적부터 누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성장해야 했습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아버지로부터 오는 압박감과 누이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는 듯 하지만, 향년 46(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암살당하고 맙니다.

 

이처럼 케네디는 비극으로 가득한 탄탄대로를 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인 이후로 차별받아야 했고, 성장하는 중에는 아버지의 크나 큰 기대로 늘 방전된 채 지내야 했으며, 평생을 신체질환과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형을 잃는 비극을 경험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누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처럼 숱한 고난들에도 불구하고 케네디가 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멋진 대통령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케네디의 사회성덕분입니다.

케네디는 특유의 사회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때로는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또 때로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며 말입니다. 

 

또한 케네디는 거듭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잘못된 것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책임감과 국민들 앞에서 진심으로 사죄할 줄 아는 솔직함이 그를 이상적인 정치인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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