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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긍정적인 용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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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0-04 오전 11:53:51 |
이메일 | unit324@suwonmental.org | 조회수 | 61 |
안네 프랑크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긍정적인 용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안네 프랑크의 일생.
그 일생을 통해 그녀가 겪은 고난과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네 프랑크는 1929년, 독일의 상업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안네 프랑크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유대교 예배에 참여하여 유대교 신앙을 배우며 성장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위인들은 이 시기에 많은 것을 배우고 업적을 쌓지만, 안네 프랑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박해로 안네 프랑크에게 행복보다 고난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1933년, 안네 프랑크가 4살이 되던 해 나치스가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교육, 교통, 거주지 등 모든 방면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실시된 것 입니다. 급기야 1938년에는 유대인 학살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에 이릅니다.
결국 안네 프랑크의 가족은 유대인 학살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유럽사회에서 소외시키려는 나치의 인종차별로 안네 프랑크의 가족은 네덜란드에서도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학교 진학에서도 차별을 받아 몬테소리 학교에서 별도로 수업을 받고, 중학교도 유대인들만 다니는 중학교로만 진학이 가능했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941년에는 독일이 네덜란드까지 점령하면서 유대인을 더욱 심하게 탄압합니다. 이에 안네 프랑크 가족은 다른 유대인가족 4명과 함께 안네 아버지의 식료품 공장 창고에서 은신합니다.
당시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망명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네덜란드의 미국 대사관이 나치 독일의 점령으로 폐쇄되면서 그 마저도 실패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망명을 시도하는 이 때도 안네 프랑크 가족은 나치의 인종차별 때문에 자동차나 전차를 타지도 못하고 비를 맞으며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안네 프랑크 가족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는 수없이 식료품 공장 창고에서 은신생활을 하게 된 안네 프랑크 가족. 지하 창고에 숨어 지내는 것도 서글픈데, 먹을 것까지 부족해서 늘 굶주린 채로 지내야 했습니다. 또, 좁은 공간에서 얽혀 지내다 보니 서로의 결점이 눈에 띄어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나 우울증으로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죽지 않으려면! 하는 생각으로 이 모든 고난도 억지로 참아야 했습니다. 지하 창고라는 참담한 공간에서 말이죠.
나름대로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었던 은신 생활이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1944년에 누군가의 밀고로 은신처가 발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안네 자매와 어머니는 하노버 근처에 있는 베르겐베르젠 강제수용소에 보내집니다.
베르겐베르젠 강제수용소에서 수용생활을 이어가던 중, 안네 프랑크의 어머니는 큰 딸이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게 되는 상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말지요. 그로 인해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안네의 어머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사망합니다. 안네 프랑크의 언니 또한 장티푸스로 사망합니다.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뒤 엄마와 언니의 연달은 죽음을 경험한 안네 프랑크.
그녀의 심정은 감히 짐작하건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안네 프랑크 역시 영양실조와 장티푸스로 16세라는 어린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어린 소녀, 안네 프랑크.
안네프랑크의 집 Anne Frank huis
그녀가 유대인 학살이라는 참담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은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용기’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네 프랑크는 전쟁과 차별이 만연하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용기’로 전쟁의 참혹함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지하 창고에 숨어지내면서도 키티(의인화) 일기장에게 매일매일 쓴 일기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네의 일기>에는 안네 프랑크에게 닥친 당시의 시대상황과 나치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유대인 학살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가 보더라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무섭고 끔찍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안네 프랑크는 자신에게 놓인 상황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천국과도 같은 생활’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비록 언제 발각될지 몰라 매일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하 창고에서 숨어 지내야 하지만, 그래도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안네 프랑크는 긍정적인 용기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거론되는 <안네의 일기>를 남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