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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우울증을 극복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비폭력 흑인 인권 운동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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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8-22 오후 5:16:51 |
이메일 | unit324@suwonmental.org | 조회수 | 411 |
과거에 비해 인종차별이 줄어들었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흑인들은 피부색이 남들보다 조금 더 검다는 이유 하나로 어마어마한 차별을 견뎌야 했습니다
심지어 1900년대 초까지 흑인은 ‘인간’이 아닌 ‘노예’로 취급받았습니다.
백인과 흑인은 태생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1857년 미국대법원이 드레스콧이라는 흑인에 대해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헌법의 기본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조항에서 ‘모든 사람’을 백인으로만 한정시키며 흑인은 ‘사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까지 내렸습니다.
이처럼 끔찍한 인종차별이 어떤 계기로 사라지게 된 걸까요?
바로, 많은 흑인들이 목숨을 걸고 흑인차별 타파와 흑인해방을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은 1929년 미국의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의 침례교 목사 마이클 루터 킹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아버지는 3대 째 교회 목사로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품성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흑인 시민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시민운동에 직접 참여하며 사회 개혁에 앞장서 왔던 사람이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신학교로 진학하여 담임목사까지 맡았습니다
또한 흑인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시영 버스의 차별적 좌석제에 대한 버스 보이콧 운동을 비폭력 전술로 이끌어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하여 전국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 1963년에는 워싱턴 대행진을 비롯한 수많은 운동을 이끌면서 공민권법 · 투표권법의 성립을 촉진시켰습니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인해 1964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며 평화전도사로서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1968년, 마틴 루터 킹은 멤피스에서 암살당하고 맙니다.
암살당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마틴 루터 킹의 일생은 찬란해 보입니다.
비폭력 전술로 승리를 거두고, 수많은 운동을 이끌며 공민권법 · 투표권법의 성립을 촉진시켰으며, 나아가서는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였으니 그의 인생에 위기나 극복 따윈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수 많은 고난들이 마틴 루터 킹을 옥죄였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 킹은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의 편지를 비롯한 사적 기록들이 철저하게 보호되며 개방되지 않고 있기에 그의 어렸을 적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명확하게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이라는 기사를 통해 13세 이전에만 두 차례 이상 자살 시도를 한 경력이 있음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는 13세 이전 두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동생 ‘A.D.’가 잘못해 난간에서 미끄러지면서 할머니와 부딪쳐 할머니가 기절했다.
마틴은 할머니가 죽은 줄 알고 절망하여, 2층 창으로 달려가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다치지는 않았다.
그는 할머니가 정말로 돌아가신 날 또 같은 일을 저질렀고 결과는 같았다.
-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 중에서
학업스트레스나 왕따스트레스 등으로 10대의 자살율이 증가는 추세이기는 하나, 1940년 경에는 10대 자살이 매우 드문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 시기 마틴 루터 킹의 연이은 자살 시도는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충동적인 애도반응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이 말년에 임상적인 우울증을 실제로 경험했다고 밝힌 것으로 추정해 보건데, 그가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우울증이 발생할 소인이 높은 성격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30세와 38세에 한 번씩 임상적인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는 주변 사람들의 회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마틴 루터 킹과 함께 수차례 행진을 하고, 마틴 루터 킹의 말년까지 연락을 유지했던 정신과 의사 ‘앨빈 푸생’은 그가 30세에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30세였던 마틴 루터 킹은 울적한 기분을 자주 표하며 일상적 활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적으로는 불면증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고, 외적으로는 왕성한 식욕으로 체중이 20파운드나 증가하는 등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38세 때는 반전 시위를 하거나 젊은 흑인 과격파들과 갈등하며 더 우울해진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빈곤문제와 사회주의적 문제를 다루다 비판을 받는 과정에서는 극심한 우울증세를 토로했다고 합니다.
1968년 킹은 광란의 속도로 일하고 있었다. …
그러나 광란의 속도도 그의 절망감, 침울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심각한 우울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
한 절친한 친구가 정신과 치료를 권했지만 그는 충고에 따르지 않았고, 점점 더 심하게 자신을 혹사시켰다.
- 역사가 스티븐 오츠의 회상
그러나 우울증이 마틴 루터 킹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겪었던 우울감이 그의 정치운동에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을 자신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폭행을 인지하고, 죄책감을 겪으며, 후회하고 변하려고 하는 모습을 만들어냈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정치운동을 정신과 치료에 빗대어 언급한 적도 있습니다.
‘환자는 미국이며 질병은 인종주의인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이 자신들에게 폭력적이라고 해도 환자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이 질병과 불안감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환자들이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런 점을 통해 마틴 루터 킹의 우울증은 그의 공감 능력을 강화시켜 철저한 공감의 정치운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 원동력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성(靈性)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마틴 루터 킹!
우리에게도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영성(靈性)이 있나요?
* 참고문헌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자서전』 클레이본 카슨
『광기의 리더쉽』 나시르 가에미